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연예인 공인 취급 언제까지?
220314 인문/철학/문화 칼럼
오늘날까지도 언론이나 대중은 연예인을 ‘공인(公人)’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말 그대로 ‘공인’이라는 건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연예인이 공인이 아니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대중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연예인인 사람이 본인을 소개할 때 마저도 종종 “공인으로서..” 혹은 “공인임을 잊은 체.” 라는 수식어를 쓰곤한다.
“공인으로서 좋지 못한 모습..”
“공인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공인임을 잊은 체 실수를 하여…”
“공인으로서 팬들과 국민들께 실망을 끼쳐 드린 점…”
혹자는 그들이 실제로 공인은 아니지만 공인만큼의 사회적 지위와 인식에 놓여 있으니 결국 공인과도 같으므로 스스로를 공인 취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사실 연예인에 대한 ‘공인’ 취급에 대한 좋지 못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02년 대한제국 시절 황실 재정을 보조하기 위하여 세운 ‘협률사’라는 최초의 극장이 만들어진다. 물론 지금의 극장과는 사뭇 다른 순수 정치적 이용 도구였다. 황실이 외국 사절단을 환영하거나 국경일을 경축하기 위해서 고종이 측근을 시켜 만든 일종의 황실 투자금으로 설립된 단체였다. 이 당시의 극단원은 궁중 소속의 의녀와 기녀 그리고 민간 소속의 삼패들로 이루어진 창기(기생)들이 전부였다.
이들 모두가 ‘협률사’에 소속되어 개인의 연회나 민간에는 파견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협률사는 황실이 소유하는 황실 사업장을 의미하였고 소속된 기생이나 창부는 월급에서 세금을 면제받았으므로 ‘공인’으로 명시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인’으로 인식되는 시초였다.
오늘날로 치면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에 소속된 직원 개념이다. 하지만 형식이 그렇다는 것일뿐, 실제로는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협률사가 민간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시장 자본이 조금씩 유입되면서 오늘날의 연예기획사로 파생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언론이나 일부 대중은 연예인을 공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조선시대의 유교 사상과 양반 정신을 고수하고자 하는 일부 사람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사고방식은 연예인들의 진짜 가치와 역할을 왜곡하는 데 일조한다. 이제는 이렇게 뒷걸음질 치는 사고에서 벗어나 현대의 문화와 연예인의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에디터 익스플로듀서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ShineWay October 2023
―Page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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